자유를 갈망하는 이유

말 그대로 돈, 집, 자동차처럼 내가 소유한 물질의 양에 비례함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자유일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돈으로 자주 비유되는 이 물질의 자유를 그토록 갈망하는 것일까?

물질적인 자유를 그토록 갈망하는 이유

다음 예로 생각해보면 그 답은 조금 쉽워 보인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표나 성공을 위해 내 시간을 파는 대가로 자신의 한 달 치의 청구서를 메워야 하는 그런 삶, 바로 대부분 평범한 직장인들의 삶이 떠오를 듯 싶다.

그러면 이 직장이란 조직에서 벗어나면 되지 않나? 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일이란 현실적으로 좀처럼 쉽지 않다는건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듯 싶다.

당장 생각이 드는 것이, 매달 월급날에 맞추어 날아오는 청구서들을 메울 생각만 해도 엄두가 안날 것이다. 지난달 욜로의 대가로 날아오는 신용 카드 청구서, 영끌로 산 아파트의 주택 담보대출 그리고 세금, 몇 달 전 용기를 내어 뽑은 신형 BMW, 아이의 사교육비, 당신이 사회 초년생이라면 모아놓은 현금도 없거니와 아직 다 갚지도 못한 학자금 대출 등등… 말하면 입만 아프다… 거기에 관련된 이유를 찾자면 밤새도 모자를 정도이다…

당장 이런저런 내 욕망의 댓가로 날아오는 청구서들을 메우지 못하면, 언제 길바닥에 나가 앉을 것만 같은 공포감이 엄습해 온다… 바로 이 물질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이 시스템을 벗어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을 듯싶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누군가는 아예 자발적으로 이 시스템형 조직인간이 답인것 처럼 자신의 고유한 C를 애써 외면한채 평생을 살며, 이 지구를 떠나기 바로전에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천국으로 가곤하는건 살면서 한번 즘은 듣곤하는 일화이다.

즉 이 부류들은 자유를 포기하는 대가로 다른 누군가로부터 통제받는 삶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곤 한다. 만약 당신도 이런 부류라면 자기 자신에게 진지하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자.

만약 이런 공포를 주는 물질(돈, 청구서) 들에서 해방되더라도 당신은 계속 시스템형 인간으로 머물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자신의 발목에 채워진 그 익숙한 쇠사슬을 쉽사리 스스로의 힘으로 풀지 못하리라고 나는 장담한다. 결국 이것이 우리가 물질적인 자유를 갈망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하는 결론이다.

돈은 주조된 자유인가?

“돈은 주조된 자유다.” “자유가 박탈당하는 사람일수록 돈은 열 배나 더 소중한 것이다.” – 죽음의 집의 기록 중에서

러시아 문학의 최고 거장,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즉 돈의 크기에 비례하여 자유라는 상숫값도 커진다는, 꽤 현실적인 의미를 닮고 있는 구절이다. 아마도 이 도스토옙스키가 말하는 이 불편한 진실을 부정할 사람은 일부 종교인이나 무소유 사회 주의의 계열의 신봉자들 빼고 또 누가 있을까? 아니 어쩌면 겉으로 돈을 부정하는 사람일수록 실제로는 돈을 더 갈망하고 쫓을 확률이 더 클 수도 있다.

한 예로 만약 당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공정하지 않고 굴욕적인 어떤 상황에 놓인다면, 그래도 그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인가? 만약 이때 당신이 돈의 여유가 충분하다면 당당하게 그 장소를 박차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돈은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정말 주조된 자유로 변신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자신의 처지가 그렇지 않다면, 굴욕적인 상황임에도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할 것이다. 바로 돈의 노예가 되는 삶이 아니라고 당당히 부정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이렇듯 적어도 지구라는 이 행성에서는 돈이라는 이 주조된 물질이란, 내가 굳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그 어떤 자유라는 속성을 담고 있는 신기한 물질임엔 분명한 사실 같다.

또한 자신이 하기 싫은 것들을 하지 않음으로 따르는 보상중 중요한 한가지인 시간적인 자유까지 얻는 보다 상위의 더 큰 보상도 따른다. 하지만 이 돈처럼 물질적인 자유만 있다고 그 사람이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또 아니라고 본다.

오롯이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 돈만 좇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도 주변에 간혹 보곤하는데, 한 예로 누가 보더라도 돈이 풍족하여 여유있어 보이는 부자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이 돈 때문에 형제 끼리도 자주 다툰다.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사회적인 이슈가 발생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듯싶다. 이런 걸 보면 돈만 있다고 반드시 행복한 삶이라고 보기는 조금 힘들다.

그래서 자유란 물질적인 자유와 함께 정신적인 자유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반드시 그런건 아니지만, 이 정신적인 자유는 물질적인 자유가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전체 퍼즐이 맞춰질 확률이 커 보인다. 내가 현실 세계에서 경험한 바로는 돈이 없으면서 정신적으로 오롯이 당당해지는 그림이란, 정말 먼저 설명한 C값이 강한 사람이 아니면 간혹 술자리와 같은 회식자리에서 하는 실수(?) 외에서는 잘 떠오르진 않는다…

그럼 정신적인 자유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쉬운 소리 안 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닐까? 사실 직장인들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장 내일의 청구서를 맺구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살기란 쉽지 않고, 어마어마한 자산을 보유한 대기업의 총수라 할지라도 어떤 누군가의 눈치는 보긴 해야하는데, 어떤 이유로든 가끔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물질의 자유가 충족되더라도 표면에 보이지 않는 내면 세계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권력이란걸 탐하는 건 아닐까 하는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이 물질적인 자유가 충족되면 다음으로 내면 세계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이 해법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누군가는 방금 말한 권력을 지향하는데, 정치인이나 경영권을 소유한 경영자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듯 싶다. 조금 다른 예로 일부 종교인들이나 철학자 또는 일명 다크호스로 분류되는 소위 우리가 마땅히 생각하는 어떤 표준화의 범주에는 확실히 벗어났지만 자유인처럼 생각하며 사는 부류들도 있다. 쉬운 예로 고대, 중세, 근대 계급사회가 존재하던 시기의 많은 철학자들은 신분이 대부분 자유인 계급이었다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조금은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내 경우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이 내면의 자유에 대한 해법을 위해 책의 현인들에게서 힌트를  얻곤한다. 물론 책안의 세상이 모든 정답을 다 가지고 있다고는 보기도 힘들고 그 들의 주장이 무조건 답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 안에서 최소한의 지적 호기심 정도를 채우며 내 상황과 경험을 토대로 나만의 철학(?) 을 채울 수는 있다. 결국 이 방법을 활용하면 현실 세계에서 응용하여 내면의 자유라는 키워드에 대해서도 동기부여를 얻을 수는 있다고 본다.

첨언하면 내 경우는 한때는 철학과 인문학을 좋아했지만 최근에는 특별히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다독을 하는 편이긴 하다. 물론 마음이 가는대로 고르다 보니 편독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여러 책을 접하다 보면 그들의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자연스럽게 축척이 되곤 한다.

그 후 조금씩 스스로 깨닫게도 된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간접경험인 책을 통해 많이 경험은 현실에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동기부여의 좋은 연료가 된다.

결국 이 연료로 인해 내면 세계의 정신적인 자유에 대한 의지도 지속되는 것이다.

이렇게 지속적인 의지를 통한 경험들 속에서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또한 찾고 실행할 확률 역시 커질 것이다.

결국 이 두 가지, 물질적 자유와 그 뒤를 따르는 정신적 자유를 누릴 때 행복의 크기 또한 비례한다는 결론이다.

Leave a Comment